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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풍경 해피투데이를 발간하여 행복메시지를 전합니다

해피투데이를 발간하여 행복메시지를 전합니다.

지난 4년 여간 '함께하는 사회 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우리 이웃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행복합니다.'와 미래를 짊어지고 갈 어린이를 위한 양서(잡지)인 '해피주니어'를 매달 각10만부 이상 발행, 사회구성원들에게 무료로 배포해 왔으며, 2010년 08월 이를 한 권으로 통합한 '해피투데이'를 발간 하였습니다.
해피투데이'는 10대부터 70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사회 만들기에 적극 앞장 설 것입니다. 더불어 2011년 06월부터 탭진 어플리케이션으로 모바일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빛과의 조우 - 사진으로 포착한 2만 개의 희망 <사진작가 조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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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의 조우

인터뷰와 사진 장보영, 정유희


사진으로 포착한 2만 개의 희망

사진작가 조세현



‘안 찍은 연예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 기라성 같은 셀레브러티들이 조세현의 카메라 앞에 섰다.
20여 년 전 그가 한강 둔치에서 캐스팅해 잡지 표지모델로 데뷔하게 된 중3 여학생이 배우 전지현이라는 사실은 연예계에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 외 이정재, 고소영, 권상우, 소지섭, 송승헌, 김민희, 임수정 등이 그의 렌즈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스타 메이커, 뉴스 메이커, 한국의 리처드 애버던이라는 수식은 그의 작업들 앞에서 조금은 부족한 수식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의 사진 작업에 변화가 생긴 건 2000년대에 이르면서다.
국내 최정상 스타들의 인물 사진을 중점적으로 찍어왔던 조세현의 포트레이트에는 입양아, 장애인, 장애 체육인, 일본군 위안부, 다문화 가족, 난민 등 사회 소외계층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중 200여 명의 사회 저명인사들이 동참해 입양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천
사들의 편지> 프로젝트는 국내 입양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 개선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조세현은 장애인 스포츠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활약하고 있다.
2007년 서울 국제패럴림픽위원회 총회 사진전을 시작으로 베이징, 밴쿠버, 런던, 소치, 리우 패럴림픽뿐만 아니라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에서도 한국인 유일의 공식 포토그래퍼로서 현장 촬영을 했다.
5월 24일까지 횡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조세현 사진전 <다시 보는 2018 평창 패럴림픽의 감동>을 통해 그 귀한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조세현의 카메라 앞에 서길 원하는 걸까?
그의 시선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열고 어루만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많은 사진 중 그가 꼽은 인생 사진은 무엇일까?
지난 4월 12일~17일 참가자 1,600명의 관심과 성원 속에 닻을 올린 ‘2018 그린보트’에서 강연 게스트로 탑승한 조세현을 만나 그가 걸어온 사진의 길에 대해 들어봤다.




그린보트에서 만난 사진계의 거장

반갑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그린보트 탑승이시죠?
네, 좋은 기회가 주어져 작년에 이어 올해 또 그린보트에 올랐네요.
바다 한복판에 띄운 커다란 배 안에서 ‘환경’이라는 큰 주제에 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 기획이라고 봅니다.
환경재단이 그동안 감내했던 여러 굴곡에도 불구하고 11년째 그린보트를 이끌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린보트와의 인연은 처음에 어떻게 맺으셨어요?
한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 이미경사무총장님이 환경재단에서 진행하는 에코포럼 같은 여러 행사들에 저를 초대해주셨고 그때쯤 저도 조금씩 사회참여 활동을 시작했던 때라 환경재단과 제가 만나는 접점이 많았어요.
환경재단을 위한 자문 활동도 많이 했구요.
과분하게 지난해 ‘환경재단이 뽑은세상을 빛낸 사람들’에도 선정됐어요. 올해 새로 생긴
미세먼지센터 이사가 되면서 환경재단과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음 사진을 시작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대단했어요.
특히 비주얼에대한 호기심이 무척 강했습니다.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아마 관음증 때문에 교도소에 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요.(좌중 웃음)
사진을 찍게 된 결정적 계기는고교시절에 가입한 사진반 덕분인데요, 당시 입시 공부하는 고3 선배들을 대신해 후배들이 사진을 찍어 콘테스트에 출품해주곤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찍은 사진으로 선배 두 사람이 금상을 받고 한 사람은 은상을 받은 거예요.
그때 어렴풋이 저의 재능을 눈치 챘어요.
그 후로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하셨죠.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사진 찍겠다고 몰려왔을 텐데,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몰래 원서 써서 입학했어요.
장학생으로 들어갔는데부모님이 등록금 한번 내주시질 않았죠.
제가 사진 찍는 걸 반대하셨거든요.
법대 들어가서 판사하기를 원하셨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학교 신문사 기자도 하고, 학보 편집장도 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만 유일하게 미술평론이 있어서 매년 응모했어요.
대학 시절 정말 어마어마하게 튀었어요.
수염 기르고 고무신 신은 채 지팡이 짚고 다니거나 학교 앞에 가마니 깔아 놓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고 쇼인데그때는 꽤나 진지했어요.
졸업 후 <주부생활>에서 사진기자로 일하셨다구요.
운 좋게도 대학 졸업하고 곧바로 신문사에 입사했는데 수습도 안 떼고 몇 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사진이란 게 찍기도 신중하게 찍어야 하지만 편집도 잘해야하는데, 찍어서 바로바로 내보내야 하는 보도사진이 저와 잘 맞지 않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주부생활>에 취직했어요.
당시 <주부생활>로 말하자면 제일 잘 나갔던 여성 종합지였어요.
김홍신, 최인호 같은 작가들이 주부생활에 글을 쓰고 사진을 실었으니까.
그때‘조세현 칼럼’이 생겼어요. 사진으로 세상의 면면을
포착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그런 코너였죠. 그런데
폐광촌에 가든, 시장통에 가든, 저는 이상하게도 현장
보다는 사람을 잔뜩 찍게 되더라구요.
사람을 오래도록 찍어서 이제 얼굴만 봐도 관상이 보
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웃음)
본성이 사람을 좋아해요.
사람 보는 걸 좋아하고.
물 사진만 40년 찍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을 보면 그얼굴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가는 방향성 같은게 보이더라구요.
이만하면 지칠 때도 됐는데, 지금도 계속 (사람이) 궁금하고 그래요.
어제 강연에서 ‘첫인상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선을 보러 간다고 예를 들게요.
선 보기 전에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재력과 학력은 어떤지 많은 정보가 교환되잖아요.
그런 정보를 컨텐츠라고 할 수 있고, 현장에서 맞닥트리는 모습을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 우리는 콘텐츠보다 이미지에 현혹
될 확률이 높아요.
이미지 중에서도 저는 첫 번째 이미지를 믿으라고 말해요.
두 번째, 세 번째 이미지에는 포장이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높거든요. 혀는 거짓말해도 얼굴은 거짓말 못해요.




그의 카메라를 비껴간 스타가 없다


스타들의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인
가요?
몇 가지가 있어요. 우선 1980년대 후반 <주부생활>에 근무하면서 장미희나 유지인, 채시라 같은 대형배우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았죠.
이후, 1990년대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스타마케팅이 시작되자 몇몇 신인들을 발굴하게 됐는데 그 신인들이 초유의 인기를 얻으면서 대형스타로 성장했어요.
그러면서 그들을 발굴한 저도 덩달아 상업 사진가로서 정점을 찍게 됐죠.
이후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 물 만난 고기였죠.
브랜드는 마구 생기지, 그때 MP3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가수들 앨범재킷 촬영이다, 패션화보 촬영이다, 촬영이 봇물 터지듯 엄청나게 쇄도했어요.
가수 조성모가 데뷔해 1집에서 4집에 걸쳐 총 1,000만 장을 팔았는데 제가 당시 앨범 표지사진을 찍었거든요.
찍어준 대가로 판매부수별 인세도 받았어요.
여러 신인들을 직접 캐스팅해 데뷔시킨 일화가 유명하죠.
전지현, 이정재, 고소영, 권상우, 소지섭, 송승헌, 김민희, 임수정 등 제가 데뷔시킨 연예인만 100명이 넘어요.
그중 40명이 스타가 됐구요. 정말이지 그때 길거리 캐스팅을 너무 많이 했어요.
당시 창간된 주니어패션지인 중앙일보사 , 서울문화사 과 연간 계약이 돼 있으니 계속 터지는 일을 쳐내기 위해 모델들을 찾으러 한강 둔치나 번화가로 나섰던 거죠.
대중들이 찾는 얼굴을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작가님의 인물 사진을 보면, 특히 인물들의 ‘눈빛’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돼요.
맞아요, 저는 눈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밖에 없어요.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눈에 있죠.
얼굴이 얼의 꼴, 얼의 그릇, 즉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면 눈은 영혼의 창이죠.
우리가 누군가와 말할 때 그 사람의 눈을 보잖아요.
그렇게 10년 동안 똑같은 방식과 톤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사진을 보면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요.
마치 한날에 찍은 것 같죠.
어떤 사람들은 말해요.
‘조세현 사진은 똑같다, 발전이 없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좋아요.
사진 스타일을 바꾸는 건 너무 쉬우니까요.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스타일을 고수하며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힘들죠.
유명한 스타들을 대응할 때 어떠한 어려움이 있나요?
10년 전만 해도 제가 연예인과 일반인을 다르게 대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게 갓난아기, 고아, 스타 모두 똑같은 피사체예요.
노숙자와 대통령을 촬영한 사진을 외국인에게 보여주면 누가 노숙자이고 누가 대통령인지 구분을 못하더라구요.(웃음)
저는 사진을 통해 저를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컨대 저는 고소영을 찍는 게 아니라 나를 찍습니다.
고소영 사진이나 이영애 사진이나 자세히 보면 똑같아요. 제 프레임 안에서는 다 비
슷해져요. 왜냐하면 나를 찍으니까요.
인물 사진을 수십 년간 찍으셨는데 왜 대통령, 시장,스타들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 작가님에게 인물 사진을 의뢰하는 걸까요?
‘신뢰’와 ‘존경’ 두 가지라고 봐요. 누군가를 신뢰하면 나를 맡길 수 있어요.
가수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포스터를 제가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10년 동안 찍고 있어요.
노영심이 그러더라구요. 포스터 사진을 찍으러 우리 사무실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왠지 모를 기대가 생긴다구요.
그건 저를 믿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사진이 항상 잘 나와요.
서로 믿으니까.
그 다음 중요한 게 존경이에요. 
40년 가까이 인물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보면 제가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도 있다고 봅니다.
전 광고 사진을 찍을 때 아트 디렉터나 광고주보다는 모델 편에 서서 일을 해왔어요.
피사체 입장에 서서 피사체를 이해해야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거든요.




법정 스님의 영정 사진을 찍으셨죠. 법복이 아닌 가사를 입고 찍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돼 화제가 됐습니다.
법정 스님의 영정 사진은 잊지 못할 사진 작업 중 하나이고 제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스님이 살아계실 때 스님 방에서 머문 적이 있어요.
그때 스님께서 말씀하시더라구요.
‘이 방에 머문 사람은 함석헌 다음으로 조세현이다’라고.
그때 ‘스님이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구나, 인정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함께 지내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처럼 편안한 표정의 사진들을 많이 찍을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스님이 인도가시기 전에 공항에서 제게 전화를 주셨죠.
‘그 사진참 좋더라.’ 그 이야기를 저는 유언으로 새겼어요.
그 사진이 결국 영정 사진이 됐구요.
스님의 칭찬 한마디로 사진에 대한 자신감을 더 가질 수 있었어요.


외삼촌과 법정 스님 덕분에 바뀐 프레임


2000년대 이후 사진 작업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동참해 입양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입양을 독려한 <천사들의 편지> 프로젝트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신부님인 외삼촌의 부탁으로 소외계층의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연예인만 찍지 말고 여기서 일 좀 도와달라’ 그러셨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 안에 제 혼이 보이더라구요.
그 시점에서 입양아들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새롭게 받았어요.
그런데 피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모두 저의 훌륭한 모델들이니까.
스타들을 동참시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올해는 특별히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출전 선수인 이상화, 박승희, 정승환, 최재우, 서보라미, 박윤정, 이승훈 등과 함께 휠체어 컬링팀이 참여했고 올림픽 홍보대사인 가수 션, 이보미도 함께했습니다.
입양아들의 사진을 찍을 때 아이들을 보는 기준이 혹시 있나요?
더 예쁘게 생겼다든가.(웃음)
애기들은 다 예쁘죠. 제가 사진을 찍으면 다 예뻐요.(웃음)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나이’를 고려해요.
입양이 가장 많이 되는 때가 태어난 후 3~4개월 됐을 때거든요.
100일 됐을 때.
그때가 아이가 사회 적응력이 가장 좋을 때잖아요.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주는 아이들의 경우 입양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무려 80%의 아이들이 입양됐어요.
15년 동안 200명의 아이들이 가족을 만났습니다.
해마다 20명 정도의 입양아 사진을 찍었는데 그중 15명 정도가 입양된 거죠.
모델이 불안해하면 사진 찍기가 힘드니 당일 컨디션이 좋은 아이들을 선택해요.
그 아이들의 경우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죠.
파양률은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입양률이 늘지는 않았어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20%를 겨우 웃돌아요.
다만 국내 입양률이 조금 올라갔다는 것, 스타 부부들의 입양이 늘었다는 사실이 괄목할 만합니다.
국내 입양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해왔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더 많은 입양아들의 사진을 찍고 싶은데 제 입장에선 스타들을 동원하는 일에 한계가 있어요.
제가 가진 자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예인들이 현재 보수를 받지 않고 입양아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저를 보기도 했어요.
자신을 좋게 포장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는 시선도 있었죠.
그런데 10년 넘게 작업하니까 아무도 이제는 그런 소리를 안 해요.
5년 전부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진 작업도 하고 있어요.
패럴림픽과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집안에 후천성 중도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저는 우리 모두가 장애인 후보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장애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약자에 대한 배려는 그다음 문제겠죠.
월드비전 홍보 활동을 오래도록 해왔는데 2006년에 대한장애인체육회 초대 회장이 저를 찾아왔어요.
럴림픽 사진 촬영을 도와달라고.
정말 좋은 기회라 생각했죠.
멋진 장애 체육인을 제가 언제 찍어보겠어요?
그렇게 몰입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사를 맡게 되고 2년 뒤 홍보위원장이 됐어요.
그렇게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올림픽 및 패럴림픽 공식 포토그래퍼로 2008년 베이징, 2010년 밴쿠버, 2012년 런던, 2014년 소치, 2016년 리우 그리고 올해 평창에서도 활약하셨어요.
런던 패럴림픽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경기든 표가 다 팔려 관중석에 빈자리가 없더라구요.
어찌나 부럽던지.
그런데 평창 패럴림픽의 경우 경기장이 반도 차지 않았어요.
뉴스에서는 매진이다, 흑자다 보도됐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죠.
지자체나 기업체에서 표를 다량으로 구매했던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공짜로 표를 제공해줘도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한번은 어떤 경기에 초등학생들이 동원돼서 왔는데 경기에 대해 잘 모르니 지루해 죽더라구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패럴림픽 사진을 찍는 동안 느낌이 어떠셨나요?
패럴림픽 기간에 경기장에 갇혀 최고의 기량과 파워를 가진 장애 체육인들과 생활하다가, 밖에 나와 일반인들을 보면 그들이 오히려 이상해 보여요.
누구에게 장애가 있는 건지 모를 만큼.


사진은 기술이고 가짜다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진은 기술에 가깝고, 저는 기술자예요.
작가(作家)가 바로 메이커(Maker)잖아요.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의미 그대로예요.
저는 사진을 예술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응당 저 스스로를 예술가나 아티스트라 여겨본 적도 없구요.
물론 사진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예술이 될 수는 있어요.
심지어 사진은 가짜라고도 하셨죠.
사진이 교묘히 편집돼 정치 사회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흔히 정치에서 내 편 네 편 가를 때사진을 많이 이용하죠.
우리는 프레임 속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죠.
사진이 가짜라는 말은, 사실조차 프레임을 거치면 거짓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뉴스 사진, 보도사진은 철저히 프레임화돼 있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예요.
이해가 가는 이야기지만, 사진이 가짜라고 여기며 사진을 찍게 되면 사진을 찍는 동기나 힘이 약해질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진실을 위해 무언가 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거든요.
오히려 사진이 사실이 아니라고 간주할 수 있어야 진실에 접근하기가 용이해져요.
‘사진은 무조건 다 사실이다’라고 말하면 사진의 범위는 너무 작아지죠.
그렇게 되면 보도 사진만 사진이 돼요.
그런데 사진의 장르는 훨씬 더 다양하잖아요.
사진 안에 사실도 있고, 사실 아닌 것도 있는 거죠.
이 많고 많은 사실 중 어떻게 내가 찍은 것만이 사실일 수 있겠어요.
도처에 이렇게 많은 사실들의 시간과 흐름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포착한 찰나만을 사실로 믿을 수 있겠어요.
결국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죠.
2010년에 만들어진 ‘(사)희망 프레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현재 120명의 유료 회원들이 있고, 기업에서 재정기부도 받아요.
혹은 공동모금을 통해 지원 받기도 하구요.
사진을 통한 사회참여 활동에 어떤 체계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도 구했구요.
현재 노숙인 자활교육과 소외계층 청소년들 대상의 사진교육을 주로 진행하고 있어요.
도전하고 싶은 사진 장르가 있으신가요?
글쎄요. 신생아, 장애인, 입양 고아들…. 지금 찍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상업 사진 찍으면서 돈도 벌어야 하고.(웃음)
제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에 2만 명의 영혼이 있어요.
앞으로도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제 프레임에 담고 싶어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마음이 더 열려 있고, 활동범위도 더 넓은 거 같아서.(웃음)
예전엔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데 개들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도않고….
요즘은 그냥 지금이 좋아요.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진 욕심이나 욕망이 점점 작아져서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도 뭐든 잘 할 수 있겠
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제는 무얼 더 모은다기보다 정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사진작가 조세현
1958년 경북 고령 출생.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국내 최정상의 포토그래퍼로 활동해왔다.
사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점차 확장돼 2000년 이후 유명인뿐만 아니라 입양아, 장애인, 장애 체육인, 일본군 위안부, 다문화 가족, 난민 등 사회 소외계층들의 사진을 찍기에 이르렀다.
<천사들의 편지>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입양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더불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공식 포토그래퍼이자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스포츠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